짧은 생각/외국인이 일본에 사는 법

일본 취업에 대한 생각

RoughTough 2021. 7. 6. 20:05

재작년 5월부터 8월까지는 거의 매주 2번씩은 비행기를 탔던 듯 하다.
면접 보러다니느라 계속 한국-일본을 오락가락하다보니,나중에는 공항 세관 직원도 얼굴을 알아봤었지.

일본으로 이직하는 케이스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무식하게 했던 것 같다.
(심지어 그 때는 일본어도 잘 못 했다. 지금도 잘 못 하지만.)

얼마 전 지인에게서 동생이 해외 취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짧게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대화하다보니 이것 저것 생각나는 부분이 있어 적어본다.

일본의 거리



1. JLPT N1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일본 취업에 대해 궁금한 게 있냐는 내 질문에 대한 그 친구의 첫 마디는
"일어는 JLPT N1 정도면 되나요?"
였다.

미안하지만, 내 생각에 일본 취업이랑 JLPT는 별로 관련성이 없어보인다.

JLPT를 공부하면서 일본어 실력은 어느 정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어느 나라 말이든 비즈니스용은 따로 있다.
특히 한글이나 일본어처럼 존댓말이 복잡한 언어는 비즈니스용 언어도 그만큼 일상 언어랑 동떨어진 성향이 있다.
JLPT만으로는 비즈니스 일본어 내지는 경어 사용법을 터득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크다.
차라리 취업을 하고 싶다면, 서점에서 적당한 비즈니스 일본어 책을 사서 그냥 외우는 것을 추천한다.

JLPT N1 따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할 필요 없다는 소리다. 없어도 된다. 
그런 자격증이 있는지 모르는 인사 담당자도 많다.
어차피 회사 입장에서는 이력서 보고 전화 통화 한 마디만 해도, 이 사람이 일본어로 업무가 가능할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회사에 따라서는 한자 쓸 수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앙케이트지 같은 것을 면접장에서 적도록 시키는 곳도 있더라.

일본에서 월급 받고 살 거면 일본어는 기본이라고 생각하자.
타자는 당연히 가능해야하고, 손으로 쓸 줄도 알아야 한다.


2. 토익 고득점, 토익 스피킹 레벨은 생각보다 메리트가 크다.

흔히 일본 사람들은 영어를 못 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딱히 그렇지는 않다.
일본에는 그 많은 인구만큼, 귀국 자녀를 비롯한 네이티브 스피커도 있고, 미국인만큼 영어 잘 하는 사람도 많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어와 영어의 차이로 인해 발음이 잘 안 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처럼 보편적으로 영어 교육에 목숨거는 분위기는 없기 때문에 토익 점수에 대한 평가가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후한 것은 맞는 듯 하다.

우리나라 취준생에게 스펙 축에도 못 끼는 토익 990점이 바다를 건너면 '음, 이 친구는 영어는 문제없겠군' 하는 자격증 비슷한 것으로 변신하니, 토익은 점수 잘 따두는 것이 좋겠다.

물론, 영어 실력이 메리트라 뽑았다면 업무도 영어를 많이 쓰는 업무를 맡길 수 있으니 그 점은 각오해두는 것이 좋을지도.


3. 군 복무도 말만 잘 하면 사회 생활 경력으로 쳐 주기도 한다.

일본에는 명목상 군대가 없기도 하지만, 모병제 국가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일본인들에게 군인이란 조금 특별한 공무원 정도의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젊은 남자만 보면 군필이냐 미필이냐부터 따지지만 일본 사람들은 그런 의식이 없기 때문에, 군 복무도 사회생활 경력으로 봐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경력란에 딸랑 병역 종료 이런식으로만 쓰지 말고, '대한민국 육군 몇사단 근무' 이런 식으로 쓰자.)
나는 간부 출신이라 호봉을 받는 직업 군인이었기에, 대놓고 직무경력란에 군인이라고 썼었다.
다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군인하다가 2년 만에 제대해서 멀쩡한 회사를 왜 갔는지 궁금해 할 수 있으므로, 한국의 제도가 이렇고 내가 거기서 무엇을 했는지 잘 설명해야 알아먹는다.
(알아먹은 척만 했는데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다.)

여튼, 나는 썰을 잘 풀었기 때문인지, 단순히 군 복무를 학교 졸업하고 했기 때문인지, 나름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채용한 회사에서 군 복무도 사회생활 경력으로 쳐 주더라.
(사회인 수당이라 그래서 한 3천엔 더 받았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내용은 한국인을 뽑아본 적이 없는 회사의 경우고, 
인사담당자가 한국인을 채용해 본 경험이 있으면 남자한테 군대갔다 왔냐고 먼저 묻기도 한다.
그런 사람한테는 암만 입 털어도 택도 없으니 무리하지 말자.


4. 어느 회사가 좋냐 보다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그 친구랑 얘기하는 중에 두 번째로 받은 질문이
"어느 회사가 좋은 회사에요?"
였다.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당연히 구글 재팬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애플 재팬이나. (구글이 먼저 나온 이유는 단순히 내가 애플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일본 취업을 준비하다보면 리크루트 사이트에서 엄청 보는 것들이 기업 연구라는 말이다.
말 그대로 이 기업이 어느 기업인지 연구한다는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 과정을 대단히 중시하기 때문에, 채용 진행 중에 우리 회사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판단되면 얄짤없이 아웃시키는 경우가 많다. (근데 채용 담당하는 친구 얘기 들어보면, 신졸은 뽑아도 자꾸 도망가서 일단 뽑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하기도.)

그러므로 회사를 찾기 전에, 업계와 직종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해 보자.
직종이야 회사나 채용 전형에 따라 종합직으로 뽑히면 회사 판단에 따라 보내지게 되겠지만, 업계는 많이 알아봐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내 생각에 일본의 산업계에 대한 제대로 분석한 자료가 잘 없는 느낌이라..
이 부분이 한국인 입장에서 의외의 복병일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글링을 하든, 일본 갔을 때 책을 사보든, 아는 사람 물어물어 찾아보든.. 업계 탐구부터 열심히 하자.

나처럼 이직하는 사람이야 전 직장이 있기 때문에 업계가 이미 고정되는 느낌이었지만...


5. 항상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며 준비하자.

일본이 한국보다 취업이 쉽다고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 말이 맞는 점은 일손이 부족한 현장이 많아서 지원하면 일단 뽑아주는 곳도 있기 때문이지만,
좋은 직장, 좋은 회사는 일본도 지원자가 넘치기 때문에 외국인이 낄 자리가 잘 없다.

특히, 일본 회사 입장에서는 외국인을 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더욱 더 보수적인 스탠스로 접근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꼭 나온다.

"왜 일본에서 취업하려 하느냐 or 일본에 왜 왔느냐"

잘 준비하자.. 난 이거 대답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혹시 일본에 여친/남친이 있는 부러운 인간들은 솔직하게 뻥 좀 보태서 얘기해라.
사귀는 사람이 일본에 사는데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고.
그럼 채용 담당자는 한시름 덜은 얼굴로 더 이상 안 물어볼 것이다.

(외국인을 뽑는 회사 대부분의 1차적 걱정은 '기껏 뽑아놨더니 적응도 잘 못하고 원래 나라로 돌아가면 어쩌냐' 하는 점이다. 애인이나 가족이 일본 사람 내지는 일본 산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상당 부분 불식시킨다고 한다.)

 

 

6. 마치며


말이 좀 샜는데, 여하튼 취업 활동은 결국 나를 파는 영업 활동이다.
나를 살 고객(회사) 입장에서 봤을 때, 내 어디가 사고 싶게 만드는 포인트인지 항상 고민하자.

잘 모르면 회사 다니는 선배나 친구한테 물어보라. 니가 사장이라면 나를 쓰겠냐고.
(보통 이런 질문을 하면 평소 인간관계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