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회사 조직이 크게 바뀌면서 사람을 뽑고 있다. 바빠 죽겠는데 면접까지 봐야 되서 더 죽겠는데, 그 와중에 면접 보고 서류 보다 보니 느끼는 점이 있어 적는다.
1. 일본 경력직 채용(중도 채용中途採用)은 서류 광탈이 많으니 좌절하지 말 것.
일본의 채용 문화는 기본적으로 신입사원 공채(신졸 채용新卒)에 기반하고 있다. 신졸로 어리고 월급 싼 애들을 왕창 받아서 키운다는 문화가 아직 강하기 때문에 경력직 비중이 좀 적기도 하고, 대졸 신입과 경력직을 뽑는 기준 자체가 크게 다르다. 신졸은 소위 '포텐셜 채용'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스펙 같은 거 안 보고 얘가 사람됨이 어떤지, 우리 회사를 잘 아는지, 우리 회사에 오면 잘 적응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를 보고 뽑는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이나 알바를 한 가지 진득하게 한 경험이 있으면 참 좋다. 그러나 중도 채용은 단가도 비싸고 하기 때문에 뽑으면 바로 실무 투입해서 성과를 내기를 바란다. 이러다보니 신졸은 서류 통과율이 극단적으로 높고, 중도 채용은 서류 통과율이 극단적으로 낮다. 중도 채용은 기대하는 업무가 명확하고 많이 뽑지도 않기 때문에 서류에서 다 거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은 줌이나 팀즈로 면접보는 경우가 엄청 많긴 한데, 그래도 면접은 면접관 일정 빼는 것도 인사팀 입장에서는 부담이고, 회사 입장에서는 그거 다 비용이다. 기나긴 저물가 기간을 거쳐오면서 일본회사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몸부림 치는 게 패시브로 몸에 박혀 있기 때문에, 월급도 비싸고 그만큼 채용회사에 줄 돈도 비싸지는 중도 채용은 서류부터 무지 진지하게 본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중도 채용 서류 통과율을 20% 밑으로 본다. 100개 찌르면 80개는 서류에서 떨어진다는 소리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언어와 문화, 업무 스타일의 차이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보수적으로 보게 되기는 한다. 근데 요즘은 하도 외국인 지원자가 많아서 그러려니 하긴 한다만, 그래도 업종이나 회사에 따라서는 아직 까탈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에, 서류 자꾸 떨어진다고 멘탈 깨지지 말자. 일본 사람들도 서류 통과하기 힘들다.
2. 경력에 공백기가 있거나 이직이 너무 잦으면 역시 뽑기 좀 그렇다.
일본 기업은 여전히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그중 하나가 바로 '장기 근속자에 대한 신뢰'다. 일본이라는 사회 자체가 '시간 = 신용'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 회사에서 5년, 10년 이상 일한 사람은 충성심, 인내심, 조직 적응력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이직이 잦거나 중간에 경력 공백(블랭크)이 있는 경우, 서류에서 아무 설명 없이 넘어가면 아무래도 뽑는 사람 입장에서 좀 께름하다.
그래서 경력에 블랭크가 있다면 반드시 이유를 써줘야 한다. 병원 치료, 가족 간병 등 최대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적인 상황" 이었음을 어필하도록 하자. 일본은 자기계발 하더라도 회사 다니면서 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공부하려고 회사 쉬었어요 이러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보통은 다른 이유가 있는데 요놈이 대충 둘러댄다고 생각한다.)
이직이 잦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중도 채용은 우리나라처럼 회사가 직접 뽑는 경우는 아예 없고, 죄다 채용회사(리크루트, 마이나비 같은 회사)를 끼고 진행하는데 사람 한 명 뽑으면 그 사람 연봉의 30% 정도를 채용 회사에 수수료로 줘야 된다. 그래서 비싼 돈 주고 기껏 뽑아놨는데 적응 못 하고 홀랑 도망가면 회사로서는 손해가 막심이다. 그래서 이직이 너무 잦으면 얘 뽑아놔봐야 금방 도망갈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직이 잦은 경우에도 최대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식으로 써라.
정 쓸 말 없으면 그냥 회사가 망해서 혹은 회사가 경영난이라 짤릴 거 같아서 미리 나왔다고 해라. 회사가 망하는 건 지원자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 신경 안 쓴다. 지원자가 그 망한 회사 사장이었다면 모를까.
3. 이력서 : 기본 중의 기본, 기본만 잘 지키자.
일본 중도 채용에 필요한 서류는 2가지다. 이력서와 직무기술서. 이건 국룰이라 외국계 기업 지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죄다 이걸 내라고 한다. 그리고 양식도 위에 사진처럼 딱 정해져 있고, 요즘은 중도채용 사이트에서 내용 적으면 국룰 양식대로 pdf 만들어 준다. 그냥 그걸 쓰도록 하자. 굳이 본인이 이상한 양식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런 거 하나도 좋게 안 본다.
그리고 이력서에는 필수요소가 몇 가지 있는데, 작성요령 간단히 적겠다.
- 사진 : 최근 3개월 이내에 찍은 까만 정장 차림의 증명사진. 반드시 정장이어야 한다. 남들 다 입는 까만 정장이 가장 무난함. 밝은 색 정장, 콤비 이런 거 일본에서는 그거 정장 아니고 사복이다. 배경은 흰색으로. 여권 사진으로 찍어서 붙이면 된다. 필터 잔뜩 씌운 사진 같은 거 붙이지 좀 말고.
- 학력 : 고등학교부터 쓰자. 고등학교 생략하는 외국인이 간간히 있는데 그러지 말기를. 나이먹은 아저씨들은 의외로 신경을 쓴다.
- 경력: 연월 단위로 누락 없이 정리. 어느 부서에 있었는지까지 쓰고, 직책이 있었다면 직책도 꼭 쓰자.
- 자격증 및 면허, 어학 : 토익은 꼭 쓰자. 요즘은 일본 사람도 토익 성적 대부분 들고 옴. (물론 우리나라처럼 900점대가 발에 채이고 그러진 않음) JLPT 있으면 좋은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으니 없다고 쫄지 말자. 어차피 서류랑 면접에서 얘가 언어가 되는지 아닌지는 다 나온다. 일능이라고 부르는 일본어 능력검정은 JLPT보다 유명하니 있으면 쓰자. 그리고 운전면허도 있으면 꼭 써라. 일본은 운전면허 따는 게 비싸서 요즘 젊은애들이 면허가 잘 없다. 그래서 운전면허도 취직에 도움이 된다. 특히 영업직 같이 업무상 차량 운전이 필요한 경우는 특히나.
- 지망동기, 보유 스킬, 어필 기타 등등 : 직무경력서 내용이랑 반드시 맞춰야 한다. 일본사람 서류 그거 꼼꼼히 다 봄. 쓸 말 애매하면 차라리 직무경력서 내용을 요약해서 쓰자. 길게 쓸 필요 없음. 요점만 짧게.
- 본인희망기입란 : 귀사의 규정에 따르겠습니다 貴社の規定に従います。/ 準じます。 이거 말고 다른 말은 쓰지 말자. 간혹 여기다 희망 연봉을 적는 외국인들이 있는데, 일본에서 이직할 때 연봉 협상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그러지 말자.
맞춤법이나 오탈자 같은 건 당연히 있으면 안 됨. 이미 냈는데 나중에 오탈자 발견하면 수정했다고 양해 구하고 다시 내자.
4. 직무기술서 : 시간순으로, 상세하게, 숫자 많이
중도 채용에서는 직무기술서가 가장 중요한 문서다. 얘를 뽑아도 될지 말지 판가름 나는 문서가 이거 밖에 없다. 이게 면접보다 중요하니 직무기술서를 잘 쓰는 것에 최선을 다 하자. 중요한 건 면접에서 다 설명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대충 쓰면 그 면접 영영 못 본다.
- 반드시 시간순으로 쓰자. 역순으로 최신 내용부터 쓰는 사람 간혹 있는데 시간순으로 쓰는 게 국룰이라 읽는 사람 입장에서 매우 어색하다. 경력도 맥락이 있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에, 반드시 시간순으로 쓰자.
- 무슨 조직에서 무슨 업무를 했고 무엇을 목표로 내가 조직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그래서 성과가 어땠는지 아주 진짜 능력껏 최대한 상세하게 쓰자. 서류에서 모든 걸 다 보여준다는 느낌으로 쓰고 싶은 말 다 쓰자. 당연히 성과를 중심으로 써야하고 그 성과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한다. 간혹 사내 보고서처럼 요점만 적는 사람 있는데, 그러면 그 서류 걸러진다.
- 아주 중요하니까 두 번 적는데, 성과는 숫자다. 숫자로 쓰자. 단순히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했다”는 말만 쓰지 말고 “연간 1,200건의 수기 업무를 RPA로 자동화하여 월 30시간 이상의 공수를 절감함” 이라고 써야 한다. 숫자가 진리다. 꼭 기억하자. 아주 시시콜콜한 것도 다 숫자로 변환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 일하면서 사용한 도구(엑셀 파워포인트 이런 거는 당연히 아니고 타블로, 파워BI 같은 거)가 있다면 그 도구가 뭔지도 꼭 적어주자.
- 그리고 회사, 부서 이름, 근무 기간 밑에 주요 성과 몇 줄로 요약해서 적어주자. 일본사람들이라 서류 길다고 대충 안 보고 하나하나 꼼꼼히 다 읽긴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구구절절 설명만 길게 쓰기보다는 보기 좋게 두괄식으로 요약해주는게 당연히 좋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업무 커뮤니케이션은 두괄식이다.
직무경력서만 최소 열 장 만들어서 가져간다는 생각으로 쓰자. 개인적으로는 회사 1개 당 직무경력서 한 장 정도는 최소한 나와야 좀 좋더라.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직무라면 포폴에 영혼을 갈아넣자.
6. 입사하자마자 성과 낼 수 있다는 걸 계속 어필하자.
제일 처음에도 얘기했지만 일본 기업은 신입사원은 인성 바른 애를 뽑아서 잘 키우자는 방향으로 접근하지만, 중도 채용은 뽑자마자 밥값 하길 바란다. 이걸 일본에서는 즉전력即戦力이라고 한다. 직무경력서건 이력서건 서류 전반에 "내가 이러이러한 업무를 해서 저러저러한 성과를 만들었으니 당신네가 뽑는 업무에 들어가면 바로 즉시 전력 쌉가능입니다." 라는 내용이 강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신졸은 포텐셜 채용이기 때문에 업무보다는 인성과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보는데 (애초에 대부분의 회사는 신졸 뽑을 때 업무나 직군을 나누지도 않지만), 중도 채용은 직무별 채용이 거의 대부분이라 직무연관성이 우주에서 제일 중요하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가 뭐하는 회사고 업무 내용이 어떤 건지 최대한 자세하게 조사하고 거기에 맞춰서 직무기술서를 쓰자. 여기저기 다 찔러넣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지원하는 직무별로 직무기술서 버전을 나눠서 관리하는 것도 좋다. (영업직 지원용 / 마케팅 지원용 / 경영관리 지원용 / 경리회계 지원용 이런 식으로다가)
7. 자기 PR은 자기 소개가 아니고 업무 능력 PR이다.
제일 마지막에 자기 PR하는 칸이 보통 있을텐데, 자기 PR 하라고 했다고 진짜로 나 요리 잘해요 이런 거 쓰는 사람 있는데 그러지 말자. 업무 능력에 대한 PR을 하라는 소리지 자기 소개를 하라는 게 아니다. 네가 100m 달리기를 9초대에 끊더라도 그게 업무랑 관련이 없다면 회사는 하등 상관이 없다. 할 말 없으면 그냥 앞에 쓴 내용 요약하고나서, '이렇기 때문에 귀사에 채용된다면 즉전력으로서 귀사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 끝내고 치우자.
8. 자신 없으면 물어보고 첨삭 받자.
일본에서 이직을 하려면 에이전트를 끼고 진행하게 될 텐데, 이 사람을 최대한 활용하자. 띠겁게 굴면 채용회사에 얘기해서 담당자 바로 바꿔라. 어차피 그네들도 당신이 이직에 성공해야 매출을 올린다. 준비하다가 모르겠는 거 있으면 적극적으로 전화하고 메일 보내고 해서 물어보고, 이력서나 직무경력서 첨삭도 받자. 직무기술서 첨삭 그거 공짜로도 많이 해주고, 업체에 따라서는 온라인으로 개인 교습처럼 가르쳐주기도 한다. 어지간하면 다 받자.
쓰다가 욱하는 바람에 너무 길어졌다... 두서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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