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일본과 한국, 일본과 세계 10

“일본도 비동간(비동의간음죄) 통과?” 오해와 진실

일전에 이런 글을 썼다. 페미, PC의 마지막 청정지대 : 일본요즘 한국은 물론 서구 사회까지 온통 '정체성 정치'로 시끄럽다. 광고 하나, 드라마 한 장면, 영화의 등장인물 설정 하나가 논란의 불씨가 된다. 한 쪽에서는 "페미가 페미했다", "PC로 더럽혀졌roughtough.tistory.com 위 글에 어떤 분이 감사하게도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댓글로 답을 드리자니 내용이 다소 복잡하고 길어서 새로 글로 쓰게 됐다.작년쯤인가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동의간음죄 통과된 일본근황 ㄷㄷㄷ”, “페미에게 먹힌 일본 근황.news” 같은 글을 본 기억이 있다. 그 때도 '이게 아닌데?' 싶은 내용이 있었지만, 설명하자니 내용이 길고 살짝 복잡해서 나중으로 미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 나온 김에 내용을 바..

페미, PC의 마지막 청정지대 : 일본

요즘 한국은 물론 서구 사회까지 온통 '정체성 정치'로 시끄럽다. 광고 하나, 드라마 한 장면, 영화의 등장인물 설정 하나가 논란의 불씨가 된다. 한 쪽에서는 "페미가 페미했다", "PC로 더럽혀졌다" 라고 욕하고, 반대편에서는 "못 배워먹은 것들", "차별적인 발언을 멈춰라" 하고 물어뜯는다. 사물의 본질에 사상이 앞서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반으로 갈랐던 냉전 시대에나 보던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이 이런 와중에 유독 조용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DEI와 페미니즘이 산업을 삼켜버린 서구권과 한국서구는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과 PC(정치적 올바름)운동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마블과 디즈니는 원작을 훼손하면서까지 여성·유색인종 캐릭터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관객의 외면을 당하..

도장 찍고 팩스 보내는 일본이 한국보다 더 글로벌한 이유

우리가 믿는 ‘일본=갈라파고스’는 편견일 뿐이다한국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선 중 하나는 '아날로그 국가', '갈라파고스화된 사회'라는 이미지다. 도장, 팩스, 현금 사용 등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고, 한국 언론은 디지털 강국인 한국과 비교하며 일본의 낙후성을 강조해왔다. 일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자성적 논의조차 한국 언론에 의해 일본의 후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구식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기업 환경에서도 실제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글로벌 기준을 향해 나아가는 유연한 디지털 사회로 진화 중이다.반면,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 보급률, 간편결제 기술 등에서 눈부..

스시녀 판타지 : '한남'들이 일본 여자에 열광하는 까닭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 따라 생각 없이 영상을 보다가 이런 영상이 걸렸다. "한국 남자들이 생각하는 스시녀의 이미지를 들은 일본인의 충격적인 반응" 흔히 인터넷에서 떠도는 '스시녀'에 대한 이미지를 일본인에게 소개해주고 그 반응을 보는 영상이었다. 한국 커뮤니티나 SNS에서 "스시녀는 이래서 좋다"며 유포되는 특징들을 일본인 여성에게 읽어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듣는 형식이었는데, 일본인 여성의 반응이 "당연한 거 아냐?"로 일관되고 있었다.'제목이 어그로가 과한한데' 싶다가도 "대 황 본"이니 "저게 한국에서는 언제부턴가 당연하지 않게 되었지" 하는 댓글창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스시녀 판타지에 등장하는 ‘기본 예절들’영상에 등장하는 '스시녀'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결혼할 때 돈을 ..

스파이 패밀리 vs 금쪽이: 저출산을 대하는 일본과 한국의 자세

얼마 전, '스파이 패밀리' 시즌3 광고를 우연히 보게 됐다. 여전히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예고편 하나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일본 콘텐츠는 왜 이렇게까지 가족의 소중함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육아·결혼 콘텐츠들과 비교하게 되었다.문화 콘텐츠가 보여주는 저출산 시대의 상반된 풍경한국과 일본 모두 심각한 출산율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두 나라가 이 위기를 받아들이고 대중문화 속에서 그것을 반영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족과 육아를 다루는 콘텐츠의 양상이다.일본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서사의 중심에 둠으로써 ..

설거지론과 도축론을 일본인에게 들려주었다.

🧩 설거지론과 도축론: 불균형한 제도의 반작용최근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는 '설거지론'과 '도축론'은 한국 결혼문화의 구조적 불균형을 보다 날카롭게 드러내는 개념이다.'설거지론'은 젊은 시절 자유로운 연애나 성적 문란함을 즐긴 여성이, 일정 나이가 지난 후에는 연애 경험이 부족하거나 순진한 남성과 결혼하여 경제적으로만 의존하거나 착취하는 상황을 비판한다. 여기서 '설거지'라는 표현은 다른 사람이 사용한 식기를 대신 치우는 행위에 비유해, 과거 남성들과의 관계를 즐긴 여성이 이제 와서 순진한 남성의 자원과 헌신을 받는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데 쓰인다. 이 개념은 주로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졌으며, 일부 사례는 SNS에서 공론화되기도 했다.'도축론'은 한국의 이혼 제도가 여성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

한국이 오해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한국에서 흔히 경제 실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인구 감소, 경제 저성장, 부동산 붕괴 같은 단어들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 일본의 상황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이미지와 다르다. 오히려 지금 한국이 처한 구조적 리스크가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일본의 사례를 다시 바라보고 한국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를 고민할 시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오해와 진실버블 붕괴 이후 산업 구조의 재편일본은 1990년대 초반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며 경기 침체를 겪었다. 이 시기를 '잃어버린 10년', '30년'이라 부르지만, 이후 일본은 생산성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여전히 세계 3..

초식남과 마케이누는 정말 페미니즘 때문일까

일본 남자들이 죄다 초식남이 되어버린 건 일본에서 과거 페미니즘이 득세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커뮤니티에서 봤었다. '진짜로?' 싶어서 일본 웹사이트를 좀 뒤져봤는데, 사실 그런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듯 하다. 일본에서 초식남이 많아진 이유는 주로 경제적 불확실성, 사회적 압박감 증가, 개인주의 성향 강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말이 거의 대부분이지 페미니즘 같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얘기와 같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로 마케이누(負け犬)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마케이누 세대라는 말도 있던데 마케이누를 그런 식으로 쓰는 건 한국 커뮤니티에서 처음 봤다. 대충 내용을 보면 페미니즘에 물든 여성들이 남자들을 못살게 굴다가 결국 결혼 시기를 놓쳐 마케이누(負け犬)로 늙었다는 내용인데, 정작 일본에..

일본에는 남탕에 들어가는 여자가 있다

일본 와서 처음으로 동네 목욕탕에 갔을 때였다. 오랫만에 때를 밀려고 예약을 하고 들어갔는데, 세신사가 나이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남탕에 여자라니? 화들짝 놀라서 허겁지겁 손에 든 수건으로 앞을 가렸다. 그런데 놀란 건 나뿐이었다. 다른 일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알몸으로 덜렁덜렁 들어와서 베드 위에 눕더라. 내가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꼴을 본 세신사가 씩 웃더니 외국인이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남탕에서 때 밀어주는 사람은 남자였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더니, 일본은 보통 남탕이든 여탕이든 여자가 때를 민다고 했었다. 지금이야 좀 익숙해져서 그렇게 놀라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흠칫하곤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했다. 한국 같으면 짐을 나를 때 "여직원이니까 좀 가벼..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 일본을 욕하는 한국

일본에 살면서 한국 사람처럼 일본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다는 것을 가끔 느낀다.막말로 "일본 망한다" 같은 키워드가 해방 이후로 쭉 어그로 상위권을 지키는 것을 보면,우리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일본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보인다. 다만, 막상 일본 와서 살다보면 '그 관심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과연 잘 알고 있는가?' 하는 것도 크게 느낀다.솔직히 일본 와서 살면서 일본 사람들, 일본 사회, 일본 회사를 관찰한 것들을 돌이켜보면,한국에서 들었던 말들 중에 맞는 말이 손에 꼽을 정도의 수준이다. 일본 가기 전에도, 그리고 일본 간 뒤에도 한국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얘기로는,"일본은 아직도 팩스에 도장 쓴다.""일본 기업의 생산성이 매우 낮다.""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 망했다""일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