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일본=갈라파고스’는 편견일 뿐이다
한국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시선 중 하나는 '아날로그 국가', '갈라파고스화된 사회'라는 이미지다. 도장, 팩스, 현금 사용 등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고, 한국 언론은 디지털 강국인 한국과 비교하며 일본의 낙후성을 강조해왔다. 일본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자성적 논의조차 한국 언론에 의해 일본의 후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구식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기업 환경에서도 실제로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글로벌 기준을 향해 나아가는 유연한 디지털 사회로 진화 중이다.
반면,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 보급률, 간편결제 기술 등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뤄왔지만, 그 이면에는 외부와의 연결성이 부족한 폐쇄적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 표준과의 단절, 자국 중심 생태계의 강화, 외국인 및 외부 기업에 대한 높은 진입장벽 등은 '디지털 강국'이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진 구조적 한계다. 결국 진짜 갈라파고스화된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갈라파고스'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일 수 있다
'갈라파고스화'란 외부와의 호환 없이 자국 내에서만 진화한 생태계를 의미한다. 한국의 디지털 인프라는 빠르고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외부와의 연동성에서는 현저히 떨어진다. 외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인증 시스템, 국내 사업자 전용 플랫폼, 해외 서비스와 연동되지 않는 결제 체계 등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일본은 변화 속도는 느릴지라도 방향성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향하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팩스와 도장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줌 회의와 클라우드 기반의 SaaS 서비스를 일상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일본의 온라인 서비스들은 복잡한 신원 인증 절차 없이,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만으로도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어 외국인에게도 접근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기술력의 차이보다는, 사회 시스템 전반에서 나타나는 '개방성'의 차이를 반영한다.
글로벌 플랫폼 차단의 결과: 한국의 디지털 고립
한국은 주요 글로벌 플랫폼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진국 중 하나다.
- 구글맵: 실시간 길찾기 기능이 국토정보법 등의 규제로 인해 제한됨.
- 우버: 택시업계 반발로 일반 차량 호출 기능이 차단, 기존 택시 중개앱으로만 기능.
- 아마존: 유통 대기업과의 경쟁 및 제도적 장벽으로 진입 실패 후 철수.
이러한 플랫폼 차단은 대부분 '자국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운 결과다. 기존 사업자의 시장지위를 보호하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유효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 생태계와의 연결을 끊어 고립된 디지털 생태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사용자 경험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글로벌 표준에서 멀어지는 구조를 고착화한다.
일본의 IT는 느리지만 개방되어 있다
일본은 여전히 도장과 팩스를 사용하는 사회다. 그러나 동시에 줌, 구글 워크스페이스, 세일즈포스, 슬랙, 타블로, 파워BI 등 글로벌 SaaS 도구들을 폭넓게 도입해왔다. 실제로 일본 기업의 클라우드 컴퓨팅 사용률은 56.2%, 한국은 **45.5%**로 약 10%p 차이가 난다. OECD, ICT Access and Usage by Businesses, 2023
또한 IDC Japan, 2023에 따르면, 일본은 제조, 금융, 공공 부문에서 SaaS 기반 업무 솔루션의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퍼블릭 클라우드 전환도 적극 추진되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뿐 아니라, 기업 환경 전반의 개방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일본의 디지털 서비스는 외국인에게 상대적으로 열려 있다. 전화번호나 이메일만으로 가입 가능한 시스템이 많아, 단기 체류자나 관광객, 비거주 외국인에게도 진입 장벽이 낮다. 예컨대,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TableCheck, 숙소 예약 서비스 Rakuten Travel 등은 복잡한 인증 없이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공동인증서, 본인 명의 휴대폰, 주민등록 기반 실명확인 등이 필수로 요구되어, 실제 거주자가 아닌 외국인에게는 큰 장애로 작용한다.
결국 한국의 디지털 시스템은 '자국민 전용'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이는 외부와의 호환성이나 확장성 측면에서 큰 제약을 낳는다.
결제 시스템: 국내 서비스 vs 국제 규격
한국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간편결제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대부분 국내용에 한정되어 있다. 외국인은 해당 앱을 설치해도 본인 인증 문제로 인해 사용이 어렵고, 국제 결제 시스템과의 연동도 부족하다.
반면 일본은 VISA Touch, G Pay, Paypal, Apple Pay 같은 국제 규격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도입해 외국인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신용카드만으로 온라인 쇼핑이 가능한 EC사이트가 다수 존재하며, 추가 인증 없이 결제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에서는 외국인이 온라인 결제를 시도할 경우, 본인 인증 단계에서 실패하거나 외국 카드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도 잦다.
결제 시스템의 성능은 단순한 속도보다도 '연결성'과 '확장성'이 중요하다. 이 기준에서 한국은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글로벌 접근성 면에서는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
인터넷 회선 산업: 수직계열화가 만든 디지털 고립
한국의 통신 구조는 망 설치와 소비자 서비스가 동일 기업에 의해 운영되는 수직계열화 방식이다. SKT, KT, LGU+ 등은 망과 리테일을 동시에 운영하며, 이는 장기적인 망 인프라 투자보다 단기 수익에 집중하는 경향을 낳는다.
반면 일본은 망 설치와 리테일을 분리한 구조다. NTT가 국가 단위 광케이블망을 깔고, 이를 기반으로 NTT 동일본/서일본, KDDI, SoftBank 등이 경쟁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 덕분에 일본은 세계적인 1티어 망사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1티어 망사업자가 부재하며, 글로벌 콘텐츠 기업이나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가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CDN을 배치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국제 트래픽은 한국을 우회하거나 품질 저하 상태로 제공되기 일쑤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에 망사용료를 요구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대표적인 사례로, **트위치(Twitch)**는 2022년 한국 내 VOD 서비스를 종료하고, 2024년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철수했다. 이는 망사용료 부담이 한국 시장 철수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대표 사례다. 결국 한국은 빠른 인터넷을 갖추고 있음에도, 외부와의 연결에서는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다.
속도는 디지털의 일부일 뿐이다
일본은 느리고 보수적인 측면이 있지만, 외부 세계와의 연결성, 호환성, 개방성 측면에서는 꾸준히 개선을 이어가고 있다. 도장과 팩스를 쓰면서도 줌과 슬랙으로 회의하며, 이메일 주소 하나만으로도 각종 서비스에 접근 가능한 사회 구조는 오히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한다.
반면 한국은 앱도 많고 기술도 발달했지만, 외국인을 배제하는 인증 시스템, 글로벌 기업을 차단하는 보호주의, 국제 표준과 괴리된 플랫폼 구조로 인해 '디지털 갈라파고스'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다.
속도는 디지털의 일부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연결, 확장성, 그리고 개방성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진짜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더 멀어진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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