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외국인이 일본에 사는 법

일본 집값에 대한 착각

RoughTough 2025. 4. 6. 19:17

일본 집값을 한국 집값과 비교할 때 흔히 언급되는 것이 일본의 타워 맨션 가격이다. 특히 도쿄, 오사카 중심지에 위치한 고급 타워 맨션의 매매가를 보면, 한국의 강남 아파트보다도 싸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보니 "일본은 집값이 싸다"라는 인식이 퍼지기도 한다. 한 편으로 도쿄 중심지 타워 맨션 가격이 최근 급등한 것을 근거로, "일본도 집값이 폭등 중이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일본 주거용 부동산 시장의 전체 구조를 잘 모른 채 일부만 보고 착각하는 것이다. 

 

일본의 주택가와 한국의 아파트 단지
출처 : ChatGPT

  • 일본 타워 맨션은 시장 대표성이 없다. 단독 주택 거래가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일본 집값이 한국보다 싼 건 맞다. 예를 들어, 도쿄도 미나토구나 주오구, 신주쿠구처럼 입지가 뛰어난 지역에 위치한 30~40층짜리 신축 타워 맨션이 10억 엔이 안 되는 가격에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9억 원 내외로 보이기 때문에 강남권의 30평대 아파트가 20억 원을 넘는 상황과 비교하면 "도쿄 한복판 집이 이렇게 싸다고?"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문제는 이 가격이 일본 부동산 시장에서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타워 맨션은 일본 전체 부동산 시장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일본 전체 주택 공급의 약 53%는 단독주택이 차지하고 있으며, 맨션(일본식 아파트)은 약 43%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타워 맨션은 전체 맨션 중 약 5% 내외에 불과한 소수 사례이다. 다시 말해, 타워 맨션은 전체 주택 시장 중 일부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를 전체 시장을 대표하는 가격으로 오해하면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주거용 부동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단독주택은 가격이 일률적이지 않다. 기획부동산 같은 게 있어서 어느정도 시가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땅을 사서 설계사무소에 건물을 의뢰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같은 평수라도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막말로 30평짜리 3층 주택 올리면서 내장재를 오만가지 비싼 자재로 갖다 바르면 3억엔짜리 집 되는 거다.
  • 일본은 건물 가격에 감가상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구축은 가격이 빠르게 하락한다.
    일본의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감가상각을 전제로 움직인다. 한국처럼 아파트가 시간이 지나면 더 비싸지는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신축 프리미엄이 가장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건물의 가치는 떨어진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주택이건 맨션이건 매수한 후 20년, 30년이 지나면 거의 '건물 가치 = 0'으로 평가받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신축 맨션은 비싸게 나오지만, 준공 후 5년만 지나도 분양가의 10~30%가 빠진다.

  • 일본은 집을 사는 것을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투자가 되기도 힘들다.
    한국에서는 내 집 마련이 재산 형성의 핵심이고, 아파트는 투자자산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생김새가 죄다 거기서 거기니 사실상 화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일본에서 집은 투자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임대 수익률도 매우 낮은 편이다. 실제로 도쿄에서 소형 원룸 내지는 투룸을 사서 월세를 받는 구조를 생각해 보면, 3천만 엔 정도의 매입가에 월세 8만 엔 수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여기에 공실 기간, 매년 수십만 엔의 고정자산세, 수선충당금 및 관리비를 고려하면 연 수익률은 2~3% 수준도 뽑아내기 힘들다. 

  • 상속세 절세 목적의 비실수요가 타워 맨션 가격을 왜곡시킨다.
    일본에서는 타워 맨션이 고령자의 상속 및 증여에 따른 절세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쿄나 오사카의 중심지에 위치한 고급 타워 맨션은 자산가들이 자녀에게 재산을 이전하거나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일본의 상속세 제도에서 부동산의 과세 평가액이 실거래가가 아닌 '노선가(路線価)'를 기반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노선가는 국세청이 매년 도로에 따라 설정하는 토지가격으로, 시세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과세 표준에 감가상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준공된 지 오래된 건물일수록 과세 표준이 적어진다. 다시 말해, 고가의 맨션이라도 노선가 기준의 토지 평가와 감가상각된 건물 가격의 조합으로 인해 실제 상속세 평가액은 매우 낮게 책정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국토교통부가 정한 공시지가와 부동산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과세되며, 특히 아파트의 경우 공시지가가 실거래가에 근접하도록 조정되기 때문에 과세 기준이 시세에 가깝다. 이러한 제도적 차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고가의 타워 맨션을 상속하거나 증여할 때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를 노린 매입 수요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수요는 실수요가 아닌 자산 이전 목적의 수요이기 때문에, 시장의 가격을 일반화하거나 실거주 수요로 해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 내진설계와 시공비 구조로 인해 일본은 목조와 저층 위주의 주택이 많다.
    건축 문화에서도 차이가 있다. 일본은 목조주택이 많고, 맨션도 외벽이 콘크리트로 마감되었더라도 실내 구조나 마감재는 비교적 단순한 경우가 많다.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라 내진 설계 기준이 엄격한데, 목조가 철골 콘크리트보다 훨씬 싸다. 목조로 저층 주택을 지으면 내진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유리하고, 철근 콘크리트에 비해 공사비도 훨씬 싸지만,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내진 설계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한 구조 보강과 시공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고층 타워 맨션은 건설 단가가 매우 높아지는 특징이 있다. 

일본의 타워 맨션 가격만을 보고 일본 집값이 어쩌고 하는 것은 매우 표면적인 인식이다. 일본의 주거용 부동산 시장은 감가상각을 전제로 한 구조이고, 타워 맨션은 극히 일부 사례일 뿐이며,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집은 투자자산이 아니라 소비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일본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오모테산도 타워 맨션' vs '반포 자이' 가격 비교만으로 일본 집값을 논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이 둘은 평수만 같을 뿐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 줄 요약 : 

  1. 일본의 집값은 신축 위주로 비싸고,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되어 싸지는 구조다.
  2. 타워 맨션은 극소수 고가 사례일 뿐이며, 상속세 절세용으로 활용되는 특수한 수요도 있다.
  3. 한국과 단순 비교하기보다는 일본 시장의 구조적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