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일본과 한국, 일본과 세계

한국을 연구하는 일본, 일본을 욕하는 한국

RoughTough 2025. 3. 31. 22:23

일본의 주택가
출처 : ChatGPT

 

일본에 살면서 한국 사람처럼 일본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은 보기 힘들다는 것을 가끔 느낀다.

막말로 "일본 망한다" 같은 키워드가 해방 이후로 쭉 어그로 상위권을 지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확실히 일본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보인다.

 

다만, 막상 일본 와서 살다보면 '그 관심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과연 잘 알고 있는가?' 하는 것도 크게 느낀다.

솔직히 일본 와서 살면서 일본 사람들, 일본 사회, 일본 회사를 관찰한 것들을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들었던 말들 중에 맞는 말이 손에 꼽을 정도의 수준이다.

 

일본 가기 전에도, 그리고 일본 간 뒤에도 한국 사람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얘기로는,

  • "일본은 아직도 팩스에 도장 쓴다."
  • "일본 기업의 생산성이 매우 낮다."
  •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일본 망했다"
  • "일본은 경제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침몰하고 있다"

등등이 떠오르는데 완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 말도 아니다.

 

팩스에 도장 쓰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기는 한데,

실제로는 전자 결재로 문서 수발하는 경우가 더 많고,

근속 연령이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전체적인 생산성이 낮은 건 맞지만,

같은 연령대끼리 비교하면 다른 나라에 비해 딱히 엄청 쳐지지도 않고,

30년 동안 물가가 거의 안 오른 것도 맞는데,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반복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일본은 30년 동안 내리 물가가 내렸다고만 생각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았다.)

경제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성장률이 낮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침몰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물리적으로는 일본이 위치한 지각은 융기하고 있다.

(해양지각이 밀도가 더 높으니, 일본에서 발생하는 지진들은 필리핀판, 태평양판 등등의 해양지각이

일본이 위치한 대륙지각 밑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지진 한 번 날 때마다 실제로는 해수면이 조금씩 내려가고 있다.)

 

이런 얘기들의 공통점이 있다.

현상을 서술하는 것일 뿐, 왜 그런지는 아무도 대답도 안 하고 묻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외국인 입장에서 특이하고 신기한 점이 많은 나라인데,

'쟤들은 왜 저럴까?' 하는 의문을 내비치는 한국 사람이 왜 없을까.

혹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일본은,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사실 평범한 일본사람도 한국 잘 모른다.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K팝 아이돌이나 드라마 정도로만 한국을 인지하는 사람도 태반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대하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일본에는 한국을 연구대상으로 인정하고 '한국학(韓国学)'으로서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의 한국학은 학문으로서 체계화 되어있고, 그에 걸맞게 객관적인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제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일본에 대한 학술연구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내가 아는 선에서는 기껏해야 일문학 내지는 일본역사 정도 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해방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일본은 여전히
'연구하면 안 되는 주제', '공부하면 안 되는 대상'으로 터부시되고 있는 걸까.

 

한국 사람에게 일본 이야기를 할 때의 감정적인 경향도 이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걸까.

 

한국의 방송 컨텐츠나 유튜브 컨텐츠에서 일본 전문가랍시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일본에서 오래 산 일반인이거나 일본의 대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수를 초대한다.

그들이 과연 "일본 전문가"일까? 우리는 과연 "일본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